르네상스는 아름다움과 균형, 조화의 예술로 정점을 찍은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그 정점 이후, 예술은 다시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고전적인 이상을 따르던 미술은 점차 긴장감, 왜곡, 불안한 아름다움을 탐색하게 되었고, 그 흐름은 매너리즘(Mannerism)이라는 새로운 사조로 이어졌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르네상스에서 매너리즘으로 넘어가는 배경과 함께, 이 사조가 어떻게 고전 미학을 해체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왜 매너리즘이 등장했을까?

16세기 중반,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사회는 큰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 정치적 불안, 전쟁과 흑사병 등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자극했고,
예술 또한 더 이상 완벽한 균형과 이상만을 추구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다 빈치의 예술이 너무도 완성도 높았기 때문에, 그 이후 세대의 화가들은 “무엇을 더할 수 있을까?”라는 부담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기존의 규범을 반복하기보다는, 의도적인 파격과 왜곡을 통해 새로운 표현 방식을 실험하기 시작합니다.

매너리즘의 특징

  • 왜곡된 인체 비례 – 일부러 긴 팔다리, 과장된 자세를 사용하여 긴장감 조성
  • 불안정한 구도 – 안정된 삼각형 구도 대신, 복잡하고 흐트러진 구도 사용
  • 차가운 감정 표현 – 르네상스의 따뜻한 인간 중심 표현에서 멀어짐
  • 강한 색채 대비 – 비자연적인 색상과 음영 사용

이러한 특징은 르네상스 예술과는 확연히 다른, 보다 내면적이고 심리적인 미술로 이어집니다.

대표 화가 – 파르미자니노

파르미자니노(Parmigianino, 1503–1540)는 매너리즘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그의 대표작 목이 긴 성모는 말 그대로 성모 마리아의 목과 손이 지나치게 길고, 아이의 신체 비례 또한 비현실적입니다.

하지만 그 왜곡은 단순한 미숙함이 아니라, 우아함과 불안, 초월적인 분위기를 의도한 결과물이었습니다.
화면 속 여백과 긴장감은 관람자에게 낯선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전통적인 성모자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대표 화가 – 엘 그레코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는 스페인에서 활동하며 매너리즘을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화가입니다.
그의 그림에는 신비로운 분위기, 극적인 명암, 찢어질 듯한 인체 표현이 반복됩니다.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같은 작품에서 그는 천상과 지상을 두 겹의 구성으로 나누고, 불규칙하고 날카로운 선과 빛으로 종교적 열광과 심리적 갈등을 표현합니다.

엘 그레코의 그림은 중세의 상징성과 르네상스의 사실주의, 그리고 매너리즘의 왜곡이 복합된 매우 독창적인 양식을 보여줍니다.

해체는 새로운 시작이 된다

매너리즘은 종종 '르네상스의 쇠퇴'처럼 이야기되지만, 사실은 고전적 이상에서 벗어나려는 새로운 미적 탐구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흐름은 이후 바로크 미술로 이어지며, 더욱 강렬하고 감각적인 미술 세계를 열게 됩니다.
즉, 매너리즘은 정체가 아니라, 변화를 위한 과도기였던 셈입니다.

다음 이야기 예고

르네상스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바로크 시대 미술의 시작과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정적이던 르네상스에서 동적이고 극적인 바로크로, 예술은 어떻게 다시 대중의 감각을 사로잡게 되었을까요?